바늘과 가죽의 시
저자 : 구병모
출판사 : (주)현대문학

나도 슬픈 영화를 보면 울고 타인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긴 하지만 그 장면, 상황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감정이 사라진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거짓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마음이었으나 슬픔 또는 기쁨이 오래 지속되진 않는다. 이런 내가 신기하게도 구병모 작가의 글에는 굉장한 여운을 느낀다. 소설 속 인물이 갖고 있는 고민, 감정에 백프로 다 공감하진 않지만 인물의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해서 몇 번씩 글을 곱씹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감정의 깊이가 느껴지고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서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책을 다 읽으면 결말이 해피엔딩이여도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닌 묘한 씁쓸함이 느껴진다. 소설 속 문체가 너무 아름답고 이야기가 동화같지만 그 안에 묘하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책을 덮으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생긴다. 바늘과 가죽의 시는 유독 그런 감정을 더 일으켰다. 책 속의 캐릭터 얀이 갖고있는 생각은 나의 생각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일까. 영원한 건 없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고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 얀. 이와 같은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정말 소중했던 무언가와 이별한 경험, 원했던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던 순간이 켜켜이 쌓이면서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취하고 있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이와 대조되게 '미아'는 오히려 이별할 수 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내 곁에 있는 지금 가장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이다. 나도 미아처럼 온 마음을 다해 매 순간 최선을 다 하고 싶지만 막상 현실에선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하는 그런 삶의 태도는 정말 본받고 싶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구두 요정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은 아름다운 문체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상처받을까 봐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는 나를 비롯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내용 정리 -스포있음]

존재의 이유와 기원을 모르고 어느 순간부터 존재했었던 얀과 형제자매들. 흔히 우리가 요정이라고 부르는 존재로 세상 여기저기에 존재했다. 자신들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얀과 미아 그리고 요정들은 구두 공방의 부부를 도와주었다. 자신들을 도와주는 존재를 인지한 부부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들을 위한 옷과 신발을 만들어 주었고 자신들이 구두를 만들어준 대가로 옷과 구두를 선물 받은 요정들은 부부의 공방을 떠난다. 자신들이 유한한 존재인지 불멸의 존재인지도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요정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곳곳으로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 속에서 인간과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이전엔 눈에 잘 보였던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요정)들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자신들과 함께 구두를 만들었던 형제자매들은 모두 사라지고 얀과 미아만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이안(얀)'은 공방을 만들어 신발을 제작하고 공방 수강생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어느 날 얀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고 미아가 얀을 찾아온다. 미아는 자신의 결혼 상대 유진을 얀에게 소개하며 유진을 위한 수제화를 주문한다. 오랜만에 미아를 만난 얀은 기쁘지만 자신들이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미아의 결혼을 걱정한다. 얀은 마지막 남은 자신과 같은 존재인 미아의 행복을 바라지만 자신들보다 먼저 죽음을 맞는 존재인 인간과의 결혼을 결정한 미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방 클래스 수강생인 시인이 자신이 어머니에게 만들어 준 수제화의 수리를 요청하고 시인의 어머니는 신발을 수리하기 위해 얀의 공방으로 찾아온다. 시인의 어머니를 본 얀은 시인의 어머니가 과거 자신이 헤어진 연인임을 알아차린다. 시인의 어머니 역시 얀을 알아보지만 전혀 늙지 않은 얀을 보며 그저 자신의 연인이었던 사람과 닮은 사람으로 치부하고 떠난다. 나이가 들어버린 과거의 연인을 마주했던 얀은 그때 연인을 떠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유진의 구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얀의 경계를 눈치챈 유진이 얀과 미아의 사이에 대한 의문을 갖고 얀은 그런 유진을 도발하여 둘은 다투게 된다. 그 사건 이후 유진의 신발이 완성되었지만 미아 혼자 완성된 구두를 찾으러 온다. 유진과 얀의 다툼을 전혀 모르는 미아는 얀에게 유진의 연극 무대에 얀을 초대하고 어쩔 수 없이 얀은 유진의 무대를 감상하게 된다. 춤을 추는 유진의 발 끝에서 자신과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존재(요정)를 다시 보게 되며 얀은 미아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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